세계 미술관 ④ 물 위에 예술 방주,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나
세계 최고의 예술 축제인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대운하와 주데카 운하가 만나는 삼각형의 끝자락은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지점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는 15세기부터 베네치아 경제의 심장부였던 옛 해상 세관 건물을 현대 건축의 거장 안도 타다오가 재생시킨 현대미술관입니다. 과거의 견고한 시간 위에 미래의 예술을 덧입힌 이곳은 이제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전 세계 컬렉터들과 예술 애호가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랑수아 피노, 패션 제국에서 예술의 제국으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배후에는 루이비통(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평생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온 케어링(Kering) 그룹의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가 있습니다. 구찌,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린 그는 기업가로서의 성공을 넘어 세계 미술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술은 공유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신념 아래, 5,000점 이상의 방대한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아 헤맸습니다.

프랑수아 피노의 예술적 야망은 베네치아의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를 시작으로, 이곳 푼타 델라 도가나, 그리고 최근 파리 도심의 곡물거래소를 개조한 부르스 드 커머스(Bourse de Commerce)까지 이어지며 ‘피노 스타일’의 전시 문화를 정립했습니다. 특히 그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전시 기획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하며,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큐레이터이자 메디치 가문을 잇는 이 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평가받습니다.

세관 건물의 전생, 베네치아의 관문을 지키던 요새
안도 타다오가 리뉴얼의 손길을 뻗기 전, 이 공간은 15세기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세관(Dogana di Mare)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상품이 통과해야 했던 이곳은 베네치아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입구와도 같았습니다.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대지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해, 외벽은 견고한 붉은 벽돌로 쌓여 있었고 내부는 선박 하역을 위한 거대한 목재 보들이 촘촘히 얽힌 산업적이고 거친(Industrial)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해상 물류의 중심이 바뀌면서 이 역사적 건축물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쇠락해갔습니다. 안도 타다오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건물은 습기와 세월에 잠식되어 있었으나 그는 그 안에서 “시간이 켜켜이 쌓인 웅장한 침묵”을 읽어냈습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보다, 이 장소가 지닌 역사의 층위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안도 타다오, 콘크리트로 역사를 포용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안도 타다오(Tadao Ando)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여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나오시마의 지중 미술관, 오사카의 빛의 교회 등을 통해 자연과 건축, 콘크리트의 기하학적 조화를 선보여왔습니다.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그는 자신의 상징인 ‘노출 콘크리트’를 외부가 아닌 건물 심장에 삽입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기존 건물의 붉은 벽돌 외벽과 고풍스러운 목재 보를 철저히 보존하면서, 정중앙에 완벽한 비례를 가진 노출 콘크리트 큐브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이 큐브는 과거의 건축물 속에 삽입된 현대적 질서를 상징하며, 관람객이 역사의 벽돌 벽과 매끄러운 현대의 콘크리트 면을 동시에 만지는 감각적인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합니다. 안도의 이러한 ‘중첩의 미학’은 오래된 건물을 허무는 대신, 그 영혼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전설적인 전시
푼타 델라 도가나는 매 2년마다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동안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적 거점이 됩니다. 공식 국가관 전시가 자르디니(Giardini)와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린다면, 푼타 델라 도가나는 피노 컬렉션의 막강한 자본과 안목이 결합된 대형 특별전을 선보이며 비엔날레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킵니다. 전 세계 예술 전문가들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현대 미술의 당대 지형도를 확인하곤 합니다.

이곳에서 열린 가장 전설적인 전시로 2017년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유물(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수많은 거대 조각들이 바닷속에서 인양된 듯한 컨셉으로 진행된 이 전시는, 옛 세관 건물이라는 장소적 맥락과 완벽하게 결합되어 전 세계 미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실제 유물인지 허구인지 모를 작품들이 안도 타다오의 공간을 가득 채웠을 때, 관람객들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예술적 압도감을 경험했습니다.

[Travel Info]
- 위치: Dorsoduro, 2, 30123 Venezia VE, Italy
- 건축: 안도 타다오 (Tadao Ando)
- 특징: 17세기 옛 세관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2009년 개관
- 팁: 해 질 녘 미술관 앞마당인 ‘푼타’에 앉아 있으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산 마르코 광장과 물결에 반사되는 안도의 건축물을 동시에 즐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