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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추락한다,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

예술의 역사에는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완성된 이름들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개념 미술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평생 중력에 몸을 맡겨 추락했고, 카메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결국 작은 돛배를 타고 대서양 너머로 영영 자취를 감췄습니다. 효율과 성공만이 유일한 선(善)인 세상에서, 그가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던 ‘실패’와 ‘상실’은 어떤 미학적 구원이었을까요?

Bas Jan Ader | | Flash Art

우리는 모두 추락한다

아더르의 가장 아이코닉한 작업은 ‘추락(Fall)’ 연작입니다. 그는 지붕 위에서 굴러 떨어지고, 자전거와 함께 운하로 돌진하며, 나무에 매달려 버티다 결국 강물로 추락합니다.

아더르에게 중력은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한계였습니다. 그는 “중력이 나를 지배할 때, 나는 비로소 가장 정직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추락은 서구 근대 미술이 추구해온 ‘완벽한 통제’와 ‘영웅적 주체’를 조롱하는 가장 연약하고도 강력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완벽한 구도를 잡고 카메라를 설치한 뒤, 아주 진지하게 ‘추락’이라는 실패를 수행합니다. 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처연한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존적인 슬픔과 동시에,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기묘한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Bas Jan Ader

너무 슬퍼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1970년, 그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약 3분 동안 흐느껴 우는 영상 ‘I’m too sad to tell you’를 내놓습니다. 당시 개념 미술이 차갑고 지적인 논리에 매몰되어 있을 때, 아더르는 가장 주관적이고 뜨거운 ‘감정’을 예술의 핵심으로 가져왔습니다. 슬픔 그 자체가 가진 순수한 에너지를 시각화함으로써 그는 관객의 마음속에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아더르는 차가운 미니멀리즘의 시대에 ‘낭만주의’를 복원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눈물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과 소통 불가능한 슬픔에 대한 짧지만 강렬한 헌사였습니다.

Lost At Sea: The Art Of Bas Jan Ader | by Gustavus Kundahl | Medium

기적을 찾아, 스스로 기적이 되다

1975년 7월 9일, 그는 자신의 생애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이자 마지막이 된 ‘기적을 찾아서(In Search of the Miraculous)’를 실행하기 위해 바다로 나갑니다.

그는 ‘오션 웨이브(Ocean Wave)’라 불리는 불과 4미터 남짓한 작은 돛배를 타고 대서양 단독 횡단에 나섭니다. 이는 예술적 퍼포먼스인 동시에,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온몸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는 떠나기 전 제자들에게 “결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항해 시작 9개월 후, 아일랜드 해안에서 전복된 그의 빈 배만이 발견되었습니다. 작가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실종은 프로젝트의 제목처럼 ‘기적’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기적 혹은 신화가 되어버린 비극적이되 완벽한 결말이었습니다.

바스 얀 아더, '1975년 7월 9일, "오션 웨이브"호 출항을 앞둔 바스 얀 아더', 1975년, 기타, 패리시 미술관
바스 얀 아데르가 1975년 7월 9일 “오션 웨이브”호 출항을 앞두고 있는 모습

죽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예술인가: 끝나지 않은 생존설

아더르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많은 추측과 생존설을 낳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실종이 죽음이 아닌, ‘완전한 익명성’을 향한 의도적인 은둔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더르가 항해를 떠나기 전, 그의 아내에게 남긴 모호한 말들과 “기적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명은 그가 세상을 등지고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쳤음을 시사한다는 견해입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타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종착역이라는 해석입니다.

일부 추종자들은 그가 항해 도중 다른 선박에 구조되었거나, 미리 준비한 경로를 통해 육지에 상륙해 유럽 어딘가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늙어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아더르는 죽은 영웅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사라짐의 예술’을 실천 중인 살아있는 거장입니다.

Bas Jan Ader: Missing at Sea, Missing at Home - The Brooklyn Rail

에필로그: 실패할 자유, 사라질 권리

바스 얀 아더르의 삶은 공식적으로는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로 끝났지만, 그의 ‘실종’은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그가 바다 아래로 침잠했든, 혹은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머무름보다는 떠남을 선택함으로써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계선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적은 어쩌면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던져 그 자체가 되는 것임을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걸어 증명했습니다.

Bas Jan Ader, Untitled (Tea Party), 1972 - ELE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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