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오웬스가 선택한 라텍스 디자이너 CAL (@straytukay)
파리 런웨이를 뒤흔든 거대한 팽창
2024년 릭 오웬스(@rickowensonline)의 가을/겨울 컬렉션 ‘포터빌(Porterville)’ 런웨이에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하는 기묘한 형상이 등장했습니다.
모델들의 다리를 거대하게 부풀린, 마치 우주복이나 미래의 건축물처럼 보이는 인플레터블(Inflatable) 부츠가 그 주인공이었죠. 아방가르드 패션의 거장 릭 오웬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 파격적인 실루엣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CAL(@straytukay)과의 협업을 통해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그 베일을 벗었습니다.

연금술사를 꿈꾸던 청년, CAL의 오리진
기이한 옷을 만드는 CAL의 패션 여정은 전통적인 의상실보다는 과학자의 실험실에 가깝습니다. 영국 출신으로 세계적인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남성복을 전공한 그는, 학창 시절부터 천을 재단하고 꿰매는 기존 재단 문법에 지독한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라텍스에 빠져들기 전 그의 초기 작업들은 주로 일상의 기성품이나 플라스틱, 비닐 같은 산업용 자재들을 다루는 실험이었습니다. 사물을 투명한 비닐에 넣고 ‘진공 압축’할 때 생기는 기묘한 뒤틀림에 매료되었던 것이죠. 그러다 문득 이 압축의 대상을 ‘인체’로 확장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고, 신체의 곡선을 가장 완벽하게 통제하면서도 엄청난 탄성을 지닌 소재인 ‘라텍스’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소재가 가진 뻔한 페티시적 이미지를 지워내고, 오직 물리적 압력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조형적 가능성에 집중하면서 그의 독창적인 라텍스 유니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공기와 압력으로 빚어낸 가변적 조각
CAL의 작업은 단순히 독특한 실루엣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라텍스라는 유연한 소재 속에 공기를 주입하거나 반대로 진공 상태로 밀착시키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기압의 변화에 따라 옷의 부피와 표면의 긴장감이 시시각각 변하는 패션의 가변성을 실험하는 것이죠.
팽창과 밀착이라는 상반된 물리적 현상을 통해 착용자의 몸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조형하는 그의 작업은 의상이라기보다 인체를 활용한 키네틱 조각에 가깝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라텍스는 철저히 구조적인 관점으로 재해석되죠. 진공 상태로 피부에 완벽히 밀착될 때는 인체의 근육과 골격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공기가 주입되어 부풀어 오를 때는 본래의 신체 비율을 왜곡하며 기하학적인 볼륨감을 만들어냅니다.
의복이 신체의 실루엣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의복이 가하는 압력에 의해 신체의 경계가 다시 정의되는 미래적인 인체학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하이패션이 주목하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
릭 오웬스와의 성공적인 협업 이후, 패션계는 CAL이 보여준 물질성과 신체의 관계성에 깊이 매료되었죠. 그의 작업은 시각적인 충격을 넘어 ‘입는 행위’가 어떻게 공간 및 기압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신선한 담론을 던졌기 때문이죠.
단단한 구조물 없이 오직 공기의 부피만으로 거대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그의 독창적인 큐레이션은, 럭셔리 패션이 나아가야 할 전위적인 미래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