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News

진실을 삼킨 완벽한 거짓, 볼프강 벨트라키의 위작 <숲(La Forêt)>

초현실주의 거장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붓 터치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깊고 어두운 숲의 풍경. 그 캔버스 앞에서는 당대 최고의 미술사학자조차 감격의 눈물을 훔치며 찬사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걸작은 에른스트의 영혼이 아닌, 한 천재적인 위조범의 치밀한 계산에서 탄생한 유령이었습니다. 2006년, 미술 시장의 정점을 찍었던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예술의 근원적인 가치에 질문을 던집니다.

진품의 아우라란 캔버스 위에 깃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믿고자 하는 서사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BRAND AS STORY - The Brand Guy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창조하다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의 방식은 기존의 위작범들과는 궤를 달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모작하는 1차원적인 모방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대신 작가의 도록에서 유실된 것으로 기록되었거나, 스케치로만 남은 ‘존재했을 법한’ 작품을 상상력으로 구현해 냈죠.

막스 에른스트는 1920년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가로지르며 무의식의 심연을 보여준 거장입니다. 특히 사물의 질감을 마찰시켜 얻어내는 프로타주(Frottage)와 캔버스 위의 물감을 긁어내는 그라타주(Grattage) 기법을 창안하여,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자연의 이면을 구축했죠.

La forêt pétrifiée - Centre Pompidou
막스 에른스트가 직접 담긴 <숲(La Forêt)>의 판화 드로잉

벨트라키가 창조한 가짜 «숲(La Forêt)»은 이러한 에른스트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철저히 해부하여 탄생시킨 1927년작 시리즈의 완벽한 변주였습니다. 벨트라키는 1920년대의 오래된 캔버스를 구하고, 당시의 안료만을 배합하여 칠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를 변장시켜 가짜 소장품 사진을 찍고, ‘베르너 예거(Werner Jägers) 컬렉션’이라는 1914년경의 허구의 출처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화풍의 완벽한 재현에 서사적 정당성까지 부여함으로써, 그는 미술계의 감식안을 마비시켰습니다.

WYWH: Tricking the Art Market – On Forgery, Beltracchi, and Scientific  Technology - Center for Art Law
위조범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가 들고있는 위조작품 «숲(La Forêt)»

맹신이 빚어낸 숭고의 환영

이 정교한 환영은 당대 최고의 에른스트 권위자인 베르너 스피스(Werner Spies)의 눈마저 멀게 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마주하고 감격에 겨워하며 진품으로 인증했고, 2006년 파리의 한 경매에서 이 작품은 약 700만 유로라는 기념비적인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발터 벤야민이 주창한 아우라의 개념을 다시금 반추하게 됩니다. 전문가와 시장이 부여한 권위는 위작에 진품의 숭고미까지 덧칠했습니다.

관람객들은 벨트라키의 붓질에서 에른스트의 고뇌를 읽어냈고, 가짜 물감속에서 초현실주의의 깊이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예술 작품의 가치가 진실이 아닌, 그것을 둘러싼 자본과 권위에 의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퍼포먼스와도 같았습니다.

막스 에른스트의 진품 <Forêt et Soleil> (1926)

티타늄 화이트가 폭로한 진실

완벽해 보였던 이 기만극은 뜻밖의 미세한 균열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2010년, 런던의 과학 수사 연구소가 작품의 성분을 분석하던 중 1927년에는 상용화되지 않았던 ‘티타늄 화이트(Titanium White)’ 안료의 흔적을 발견한 것입니다. 시대의 화학적 한계를 간과한 단 하나의 안료가 진실을 드러낸 것이죠.

Titanium White Color | e4e4e4 | Color conversion CMYK | Hsl | Rgb | Pantone  Printing Match

그러나 벨트라키가 체포된 이후에도 미술계의 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어제와 오늘이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작품이 뿜어내던 감동마저 증발해 버리는 현상은 우리에게 깊은 철학적 딜레마를 남겼습니다.

벨트라키의 «숲»은 미술사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캔버스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사물이 품고 있는 고유하고 진실된 서사에서 비롯됨을 이 위작 사기극은 반증했죠. 우리가 미술관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바라보는 수많은 걸작들 앞에서, 그 감동의 연원이 캔버스 위 물감인지 아니면 액자 옆에 붙은 이름표인지 조용히 자문해 보게 됩니다.

막스 에른스트의 숲 그림을 변주한 작품 앞, 볼프강 벨트라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