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탐방기 ② 채소라는 완벽한 오브제, ‘채소생활(VEGELAB)’
흔히 ‘채소’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식탁 위의 조연 혹은 건강을 위해 의무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기능적 재료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충남 홍성의 깊은 밭줄기 사이에서 피어난 브랜드 ‘채소생활(VEGELAB)’은 이 지루한 고정관념에 우아한 반기를 듭니다. 이들에게 채소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닙니다. 땅이 빚어낸 가장 완벽한 ‘디자인 오브제’이자, 인문학적 서사가 깃든 ‘예술적 매개체’이죠.

채소라는 완벽한 오브제(Objet)
디자인을 전공한 이윤선 농부(34)에게 채소는 예술 그 자체입니다. SNS에 올라오는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인 채소 그래픽은 모두 그녀의 작품입니다.
“농장에서 잎이 달린 당근을 처음 본 날, 그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저에게 채소는 완벽한 오브제예요. 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 제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박건오, 이윤선 두 농부가 이끄는 채소생활은 스스로를 ‘농장이자 연구소’라 명명합니다. 이들의 행보는 농업의 전형적인 문법을 탈피해 있죠.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감각은 밭 위에서 ‘비주얼 텔링’으로 승화됩니다. 인스타그램(@vegelab) 피드를 가득 채운 보라색 콜라비의 곡선, 흙 묻은 레터스의 다채로운 채도는 마치 갤러리의 정물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땅을 갈지 않는 ‘재생유기농법’
채소생활과 베지랩이 실천하는 핵심은 ‘재생유기농법’입니다. 이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농사의 상식처럼 여겨지는 ‘경운(땅을 갈아엎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무경운(No-till): 트랙터로 땅을 갈지 않아 토양 속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을 막습니다.
최소한의 간섭: 하우스와 밭에 넣는 거름을 최소화하고, 멀칭(땅 덮기) 시에는 여러 번 재사용 가능한 부직포를 활용합니다.
다양성의 힘: 펜넬, 딜, 고수, 골든보이베이비 등 100여 종의 품종을 직접 씨앗부터 키웁니다. 이를 위해 종자 보관 냉장고를 갖추고 매일 모판을 돌봅니다.

농부를 키우는 농부
이곳은 새로운 세대의 농부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팅 농장’이기도 합니다. 이미 12명의 농부가 이곳을 거쳐 독립했습니다.
특히 이곳의 협력 관계는 특별합니다. 인근에서 ‘오와린’ 농장을 운영하는 이재영 농부는 채소생활에서 배운 뒤 독립하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생유기농법용 소형 농기구를 직접 제작해 보급합니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흙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청년 농부들은 기술과 철학을 공유하며 거대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지속가능성: ‘힘돈사’를 넘어서
17년 차 베테랑 박건오 농부(46)는 농업의 생태적 가치만큼 ‘경제적 자립’을 강조합니다. 농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자조 섞인 말, ‘힘돈사’(힘은 들고, 돈은 안 되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직업)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적정 규모의 미학: 수억 원의 빚을 지고 시작하는 대규모 농업 대신, 감당할 수 있는 규모에서 내실을 기합니다.
- 수익 구조의 확보: 1인당 최소 월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목표로 합니다.
- 사회적 가치: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생태적 농사도 이어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감각이 청년 농부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합니다.

채소를 통한 ‘좋은 삶’의 설계
결국 채소생활이 궁극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채소’ 그 자체가 아니라, 채소를 매개로 한 ‘좋은 삶(Good Life)’의 태도입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자연의 미학을 발견하고, 식탁 위에서 계절의 흐름을 향유하는 여유. 그것이 바로 이들이 제안하는 진정한 럭셔리이자 예술적 농업의 본질입니다. 채소생활의 밭은 오늘도 대지라는 캔버스 위에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색을 덧칠하고 있습니다.
[CONTACT & SNS]
- 농부: 박건오, 이윤선
- 위치: 충남 홍성군 홍동면
- INSTAGRAM: @vegelab
- 핵심 철학: “좋은 흙이 좋은 채소를 만들고, 그 채소가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