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완벽한 일치보다 아름다운 어긋남, 스티브 라이히의《Clapping Music》

매번 다르게 들리는 완벽한 반복을 마주하다

공연장에서 악기도 없이 오직 두 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와 박수만 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치는 리듬은 완전히 똑같죠.

그런데 기묘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귀에 들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같은 리듬이 무한히 반복되는데도 그 결과가 매번 다르게 들리는 이 신비로운 경험.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가 1972년에 발표한 《Clapping Music(박수 음악)》은 음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인 방식으로 실현하는 현대 미학적 작품이죠.

SCRUTINY | Steve Reich At 80 A True Musical Event

소리의 규칙을 바꾼 혁신가, 스티브 라이히

193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스티브 라이히는 필립 글래스, 테리 라일리와 함께 현대 음악 및 시각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입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 이때 들었던 철로의 규칙적인 마찰음과 리듬은 훗날 그의 음악적 문법에 거대한 자양분이 되죠.

처음부터 음악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코넬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깊이 경도되었는데, 복잡한 사유를 명료한 언어로 정제하는 철학적 태도는 고스란히 그의 작곡 철학으로 이어집니다.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과 밀스 칼리지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한 라이히는 서양 클래식의 거대하고 복잡한 화성학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대신 그는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타악 리듬, 인도네시아의 가멜란 음악, 그리고 히브리어 성가 등 인류 본연의 원시적이고 반복적인 소리 구조에 눈을 돌립니다.

그는 서양 음악이 고수해 온 ‘멜로디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소리의 가장 최소 단위인 ‘리듬과 시간’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위적인 작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The legacy of Steve Reich – Minimalism and Music for 18 Machines –  STEREOKLANG

테이프 루프에서 출발해 ‘위상 변이’를 발견하기까지

스티브 라이히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바로 ‘위상 변이(Phase Shifting)’입니다. 이 독창적인 기법은 아주 우연한 기술적 실험에서 탄생했죠.

1960년대 중반, 라이히는 길거리 전도사의 목소리나 빗소리 같은 일상의 소음을 녹음한 뒤 이를 테이프 루프(반복 재생 장치)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 대의 재생 장치에 똑같은 녹음테이프를 넣고 동시에 틀었는데, 기계의 미세한 성능 차이로 인해 두 소리의 속도가 아주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일치하던 두 목소리가 서서히 엇갈리며 기묘한 에코를 만들고, 완전히 새로운 리듬의 파장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죠.

라이히는 이 우연을 인간의 연주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전자음악에 머물 수 있었던 개념을 실제 연주자의 신체적 수행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피아노 두 대로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연주하는 《Piano Phase》(1967) 등을 거쳐, 마침내 기계나 악기라는 매개마저 제가하고 인간의 육체만 남겨둔 정점이 바로 《Clapping Music》입니다.

《Clapping Music》: 단순한 재료로 쌓아 올린 파장

《Clapping Music》의 규칙은 철저하리만치 직관적입니다. 무대 위에는 오직 두 명의 연주자만 존재하며,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12박으로 구성된 단 하나의 아프리카풍 리듬 패턴입니다.

첫 번째 연주자는 이 리듬 패턴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일정한 템포로 고정한 채 유지합니다. 반면, 바로 옆에 선 두 번째 연주자는 동일한 패턴을 연주하되, 일정 주기를 두고 리듬의 시작 지점을 한 박(8분음표)씩 앞으로 당기며 이동하죠.

두 연주자가 완벽하게 같은 리듬을 치던 1단계에서, 두 번째 연주자가 한 박을 앞당기는 순간 시각 예술의 ‘무아레 효과(두 개의 반복되는 패턴이 겹쳐질 때 생기는 기하학적 왜곡)’ 같은 청각적 현상이 일어납니다. 분명 두 사람이 같은 박수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어긋남의 틈새에서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리듬의 다성성이 피어나죠.

그렇게 한 박씩 밀려난 리듬은 총 12단계의 입체적인 관계 변화를 거친 뒤, 마침내 13단계에 이르러 다시 처음의 일치 상태로 돌아오며 둥근 순환의 궤적을 완성합니다.

Moiré pattern reveals exotic boson material - Futurity
두 개의 반복되는 패턴이 겹쳐질 때 생기는 기하학적 왜곡 <모아레 현상>

시각 예술과 현대 무용이 사랑한 스티브 라이히

스티브 라이히의 작업은 단순히 음악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대 화이트 큐브의 개념 미술가들과 현대 무용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리듬의 반복과 어긋남을 시각적 레이어의 중첩으로 해석한 리처드 세라, 솔 르윗 같은 미니멀리즘 시각 예술가들이 그와 긴밀하게 교류했죠.

특히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는 라이히의 《Clapping Music》과 《Fase》 등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의 동선을 정교하게 계산한 안무작을 발표하며 무용계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소음이 예술이 되는 순간의 경외감

스티브 라이히의 삶과 그의 마스터피스 《Clapping Music》은 거창한 장비나 무대 장치 없이도 인간의 행위만으로 전위적인 미학을 구축할 수 있는지 보여주죠. 일상적인 박수 소리가 철학적이고 정교한 규칙과 만나 하나의 개념적 예술작품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익숙했던 소음 속에서 새로운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Clapping music - Steve Reich Sheet Music for Hand clap (Solo) |  MuseSco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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